트램을 타고 떠나는 도시의 반대편
한창 바쁜 뉴욕 중심에서 잠깐 빠져나와, 섬으로 향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까? 그 섬은 거창하거나 유명하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관광객이 적고, 지역 주민들의 조용한 일상이 묻어 있는 곳이라면 더 좋다.
**루즈벨트 아일랜드(Roosevelt Island)**는 그런 뉴욕의 숨은 섬이다.
루즈벨트 아일랜드란?
루즈벨트 아일랜드는 뉴욕 이스트강 한가운데, 맨해튼과 퀸즈 사이에 놓여 있는 좁고 긴 섬이다.
지도로 보면 길게 찢긴 초승달처럼 생겼고,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할 만큼 작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역사, 건축, 휴식, 전망, 철학이 조화롭게 들어서 있다.
이 섬은 과거에는 병원과 정신병원, 교도소 등이 자리했던 어두운 역사를 가졌지만, 지금은 조용한 주거지와 공원, 자전거 도로, 그리고 작은 기념비적 공간들이 공존하는, 뉴욕 안의 또 다른 도시처럼 느껴진다.
하늘을 나는 기차, 루즈벨트 아일랜드 트램웨이
루즈벨트 아일랜드로 가는 가장 특별한 방법은 단연 **트램웨이(Tramway)**다.
맨해튼 59번가와 2번가에 위치한 작은 정류장에서 탑승하면, 곧장 하늘로 떠오른다.
이스트강을 가로지르며 강물 아래로 달리는 차들과, 옆으로 뻗어 있는 퀸즈보로 브리지를 지나, 마치 공중 도시 여행을 하는 기분을 준다.
영화 속 루즈벨트 아일랜드
이 트램웨이는 2002년 영화 **《스파이더맨》**에도 등장한다.
그린 고블린이 시민들과 메리 제인을 동시에 위협하며 트램을 공중에 매달아 스파이더맨에게 선택을 강요하던 그 유명한 장면.
지금은 조용한 통근 수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영화 속 추억이 깃든 장소다.
철학이 깃든 공원, 프랭클린 D. 루즈벨트 포 프리덤 공원
섬의 남쪽 끝에 위치한 이 공원은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의 1941년 연설에서 유래한 ‘네 가지 자유(Four Freedoms)’ –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
이 그것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이 생의 마지막에 설계한 이 공원은
대칭 구조와 단순한 석재의 질감, 트인 공간을 통해 강한 메시지를 전한다.
공원 가장 끝에 서면 미드타운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이 펼쳐지고,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 그림자와 석조 벽에 새겨진 루즈벨트의 말이 조용한 울림을 준다.
이곳은 사색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좋은 공간이다.
말하지 않아도,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해주는 곳.
섬을 걷는다는 것
루즈벨트 아일랜드는 도보 여행에 최적화된 구조다.
자전거 도로와 강변 산책로, 작은 공원, 커뮤니티 정원과 오래된 등대까지.
북쪽 끝에는 19세기 말 건축된 작은 등대(Lighthouse)와 유서 깊은 요양병원 유적이 남아 있고, 남쪽 끝에서는 고요한 철학과 도시의 풍경이 맞닿는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민들이다.
산책을 하거나,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조용히 걷는 부모들,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노인들,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모두가 바쁜 뉴욕과는 조금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루즈벨트 아일랜드 가는 방법
- 트램: 59th St & 2nd Ave, 맨해튼 – 루즈벨트 아일랜드 트램 탑승
- 지하철: F라인 – Roosevelt Island 역 하차
- 페리: NYC Ferry, Astoria 라인 – Roosevelt Island 선착장 하차
도심 속 느린 섬
뉴욕은 빠른 도시다.
하지만 루즈벨트 아일랜드에서는 모든 것이 조금 더 느리고, 조금 더 조용하며, 조금 더 진지하다.
이 섬을 걷는 시간은 마치 바쁘게 흐르는 강물 옆에서 혼자만 멈춰 서 있는 듯한 기분을 준다.
당신이 뉴욕의 또 다른 얼굴을 보고 싶을 때,
‘섬’이라는 이 도시의 틈새로 들어가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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