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투영된 욕망, 그리고 그 이면
“한 번쯤은 뉴욕에 가보고 싶다.”
이 말은 단순한 여행 욕구가 아니다. 누군가에겐 인생의 목표이고, 또 누군가에겐 사회적 성취의 상징이다. 뉴욕은 많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열망의 대상‘으로 기능한다.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하나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심리적, 상징적 공간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뉴욕은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2024년 기준, 뉴욕은 연간 6,6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방문 도시 중 하나이며, SNS 해시태그 ‘#newyork’은 수억 건을 넘긴다. 헐리우드 영화의 상당수가 뉴욕을 배경으로 삼고 있고, 글로벌 대기업의 광고는 뉴욕의 스카이라인이나 타임스퀘어를 배경으로 소비자의 감정을 자극한다. 이 모든 것이 뉴욕이라는 도시의 상징 자본(symbolic capital)을 형성해왔다.
하지만 진짜 뉴욕은 어떤가?
우리가 꿈꾸는 뉴욕은 과연 실재하는가, 아니면 우리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가?
뉴욕은 분명 역사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도시다. 월스트리트와 유엔 본부, 브로드웨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MoMA, 그리고 수많은 유서 깊은 대학과 연구기관이 이 도시 안에 있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상징이자, 세계화의 정점에서 복잡하게 작동하는 도시 시스템의 결정판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의 뉴욕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맨해튼의 중간 월세는 5천 달러에 육박하고, 교통은 만성 정체이며, 지하철은 노후되고 종종 위험하다. 노숙자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은 여전히 범죄율이 높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게 뉴욕은 냉혹하고 배타적인 도시일 수밖에 없다. 이 도시는 성공한 자에겐 세계의 중심이지만, 그렇지 않은 자에겐 끊임없이 밀려나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뉴욕을 꿈꾼다.
왜일까?
그 이유는 뉴욕이 현실을 반영하기보다는 ‘열망’을 투영할 수 있는 장소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뉴욕이라는 도시 그 자체보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성공한 나”, “자유로운 나”, “글로벌한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타임스퀘어에 서 있는 자신, 센트럴파크에서 책을 읽는 자신, 브루클린의 카페에서 창작하는 자신을 떠올린다. 즉, 뉴욕은 ‘가능성의 자아’를 연출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는 뉴욕을 좋아한다기보다는, 뉴욕에서 살아가는 나의 특정한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뉴욕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전 지구적 상상력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스파이더맨”, “어벤져스”, “셋업”, “섹스 앤 더 시티”, “프렌즈” 등 수많은 작품이 뉴욕을 배경으로 설정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세계인은 이미 무의식 속에서 뉴욕을 접하고 살아왔다. 심지어 그 도시를 방문하기도 전에 그곳에 대한 감정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뉴욕은 체험되기 이전에 소비되는 이미지다.
한국 사회에서도 뉴욕은 특별한 위상을 가진다.
유학을 다녀온 누군가는 “뉴욕에서 공부했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꺼낸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선 뉴욕 브런치, 거리풍경, 지하철에서의 스냅샷이 감성 콘텐츠로 가공되어 확산된다. 브랜드의 명칭과 캠페인에서도 ‘뉴욕’이라는 단어는 종종 사용된다. “뉴욕 감성”, “뉴욕 라인”, “뉴요커 스타일” 등 뉴욕은 실제 경험 없이도 소비되는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한국 사회는 교육적 배경, 글로벌 경쟁 환경, 미디어 소비 방식에서 뉴욕에 대한 이상이 더 강하게 투영되는 편이다. 한국인은 비교적 일찍부터 ‘영어’와 ‘미국식 성공 모델’에 노출되며 성장해왔고, ‘세계 중심에서 살아보는 것’에 대한 욕망을 더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중요한 질문이 있다.
우리가 정말 뉴욕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뉴욕을 사랑한다는 감정’을 통해 자기 가치를 증명하려 하는가?
혹은, 뉴욕을 동경함으로써 지금의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뉴욕은 분명 세계적인 도시다. 그러나 그 도시에 대한 열광은 다분히 기획되고, 반복되고, 소비되는 감정이다. 진짜 뉴욕은 관광 루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사람에 치이고, 빈곤과 마주하고, 분노와 냉소가 가득한 도시다. 반면, 그 안에도 여전히 꿈꾸고, 만들어가고, 살아내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게 진짜 도시이고,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다.
뉴욕은 열광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그 도시를 찬양하기에 앞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뉴욕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진실한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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